목회칼럼

사랑과 생명
이 세상에는 사망소식으로 꽉 차있고 성경은 생명소식으로 꽉 차 있다
근자에 들어 더욱이 죽은 자의 뉴스가 눈떠서 눈감을 때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종 플루로 인한 사망뉴스 테러로 인한 사망뉴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뉴스 등
온통 죽음과 사망만이 있는 세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망뉴스가 난무하고 있다.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사망에 대한 공포심까지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망의 법이 생명의 법을 이기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모두 죽고 죽이는 자로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려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시다.성령은 살려주는 영이시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
이라고 하였다.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은 살려주신는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뜻이요 하나님은 죽은자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육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다 최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살리는 분이시다.
바꾸어 말하면 육의 사람은 죽이는 자요 성령의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자이다.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자요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자는 사람을 살리는 자이다.
빛이 어두움을 이기고 선이 악을 이기고 진리가 불의를 이기듯 생명은 사망을 이긴다.이 세상 누구도 사망을 이긴 사람도 없고 죽은 자를 부활시킬 능력도 권세도 없다 그러나 사망이 왕 노룻하고 많이 죽인 자가 왕 노룻하는 이 세상을 생명이 
왕노롯하고 많이 살리는 분이 만왕의 왕 되심을 밝힌곳이 성경이다.
오늘날의 참된 메시지는 생명이어야 한다 죽음과 사망의 영혼들과 이세상을
생명의 뉴스로 생명의 말씀으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이 세상을 덮어야 한다.
심지어 신학까지도 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두뇌로 학문화하여 죽은
신학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때 생명신학이 나온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신학의 
전환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다면 생명신학은 신학개혁을  하게 될 것이다.
생명신학만이 참 된 신학이 될 것이요. 사망의 땅에 생명소식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죄와 사망의 법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생명의 법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2019년 11월17일 목회칼럼
불만과 감사
불만 은 만족이 없는 것이고 감사 는 이상의 표현이다. 감사라는 말은 원래 Thank에서 왔다. Thank는 감사이다. 깊이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없는것을 계수하면 불만이 나오고 못 받은 것을 받은 은혜로 계수하면 감사가 나온다.은혜로 인해 감사한다는 성결구절이 많다.불만은 결국 불편을 낳게 되고,불평은 원수를 만들고 결국,사람을 죽이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가인은 동생 아벨에 대해 불만하다가 그의 동생인 아벨을 죽였다.그래서 가인 Complex 라는 말이 있다.불만은 열등감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결국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에 대해 질투심을 넘어 가인처럼 살인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사울도 다윗에 대해 일생동안 불만하다가 적은 질투심을 극복하지 못해 마지막 인생을 파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불만을 이긴 감사는 곹 은혜를 깨달은 격 있은 신앙인을 만들고 또한 삶을
부요케 한다. .

자유와 도리

자유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도는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말한다.도를 넘는 자유는 방종하게 되고 자유 없는 도는 구속받게 된다. 이 둘은 기차의 두 레일과 같아서 어느 하나가 없어도 안 된다.그래서 자연 질서를 보아도 바닷물이 자기의 경개를 넘어 육지로 넘어 들어온다면 온 지구는 물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질서는 한계가 있고 도가 있는 것이다.또한 지구가 주기법이 있어 태양과 거리가 정해진 거리에서 돌아야지 자유하다 하여 돌다가 안돌다가 하던지,태양이 지나치게 가까이 갔다가 지나치게 멀어지면 인류는 타 죽던지 얼어 죽을 것이다 만사에 경계가 있고 도가 있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현대인들은 인간이 마땅히 행애야 할 도를 넘어서고 있다.부모와 자식을 보아도 하루에 한 건이 넘도록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여 자식 있는 부모들은 자기들을 언제 죽일지 불안해하고 있다고 한다.구름 없는 비 없고 뿌리 없는 나무 없고 부모 없는 자식이 없다.자기의 정체성을 알면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 것이다.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돈 때문에 자기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다고 하여 살해한다면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육제의 기회로 삼는 것이며,ㄷ또
자유의 도를 넘어서 부모를 할해하여 패륜아가 되는 자식처럼 자유의 도를 넘어서 한 자식의 도를 넘어서서 패륜아가 되는 것이다.
자유의 도를 넘어서 부모를 살해하여 패륜아가 되는 자식처럼 자유의 도를 넘어서서 국민을 살상하고 국가를 전복하려한다면 이는 애국이 아니라 이적행위가 되는 것이다.
북한 방송은 이런 이를 애국지사로 선전하고 있다 국민들은 누가 진정한 애국자이며,누가 이적자인지를 지성을 가지고 냉철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근자에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하여 배도한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